본문 바로가기

H레터

[가족愛재발견] 하나의 바퀴로 달리는 외발자전거

< 외발자전거 > 


하나의 바퀴로 달리는 외발자전거.


서커스단의 수려한 묘기가 먼저 떠오르는 외발자전거는 바퀴가 두 개 있는 보통의 자전거보다 중심을 잡는 게 힘들고, 살짝 비틀거리기만 해도 쓰러질 것만 같다. 외발자전거를 능숙하게 운전하는 기수들은 여러 번의 연습으로 굳은살이 박이고, 그것들이 벗겨질 때 즈음에 ‘균형’이란 새살이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연습시간도 없었던 어느 날 외발자전거에 오른 사람들이 있다. 홀로 부모의 두 몫을 다하는 '한 부모 가정'의 엄마들.. 나는 외발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며 살아가는 아홉 가족이 떠난 중국여행기에 동승해 본다.


- 1 -

숙소(윈덤 싼야 베이 호텔)에서 내려다본 싼야시하이난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야자수


12월의 어느 금요일 저녁. 도심의 번화가만큼이나 인천국제공항에도 여행자들의 불금이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하나투어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사회공헌프로젝트 '가족愛발견'으로 특별히 선정된 종로구의 아홉 가족이 중국 하이난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나는 기획담당자와 함께 인솔을 돕고, 여행 기간 동안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기꺼이 동행에 나섰다.



중국 싼야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겨울에서 여름으로 계절을 역행하듯 후덥지근한 날씨가 공관들의 차가운 표정으로 긴장된 우리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이번 프로젝트 여행에 함께 한 아홉 가족은 사실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공항에서 내게 기내에서 떡을 먹어도 되냐고 물었던 기쁨이는 지적장애 3급으로 생활에 불편함은 없으나 엄마의 긴밀한 보호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이는 뛰어난 첼로 연주 실력을 갖고 있어 일찍 예술고등학교 합격을 받아놓은 상태였다. 비행기에 오르며 인슐린 주사약을 걱정했던 아름이네 엄마는 지적장애와 당뇨를 앓고 있었는데, 경제활동이 어려워지자 그 불안을 의지할 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여행 내내 말이 없던 아름이와는 마지막 날에야 겨우 짧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독학으로 배운 애니메이션 실력이 전문가 못지 않았다. 이렇게 두 가족 말고도 목발 없이는 다니기 힘든 엄마와 자매처럼 살아가고 있는 예쁨이(가명)네, 그리고 큰 키와 씩씩한 성격과 반대로 눈물이 많은 마음이(가명)는 자기처럼 신체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며 지금 사회복지사1급을준비 중이라고 했다. 또 아빠와 사별을 하거나 부모가 이혼하는 등 안타까운 사연을 갖고 있었다.



어떤 사연이건 또 이유가 어찌됐든 가장으로써의 모든 역할을 해내는 엄마들은 외롭고 바쁜 삶의 속에 있다. 그 곁을 아이들이 지키며 살아간다. 글쎄? 양쪽 부모가 있는 가족과 뭐가 다를까? 나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담담히 질문을 띄워봤다. 우리 엄마도 홀로 언니와 나를 길러냈는데, 살면서 다르다고 생각해 본 기억이 크게 없었기에 대답은 ‘없다’였다. 다만 평생 서로를 향한 애틋함의 정도가, 행복할수록 커지는 어떤 미안함이, 또 서로 알지만 외면하는 외로움이 다를까? 새벽에 도착해 바로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 가족들. 어떤 첫날밤을 보내고 있을까?


멀리 창밖으로 보이는 불빛 속에서 엄마의 미소가 별처럼 반짝였다.



무려 108미터 높이를 자랑하는 남산풍경구의 시그니쳐, '삼면관음상'


- 2 -

동양의 하와이라는 중국의 섬 하이난은 ‘한국으로 치면 제주도 정도?’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기에 면적이 제주도보다 19배나 크다. 날씨는 1년 내내 연평균 20도 안팎으로 늦여름과 초가을 날씨정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한 날, 마침 중국 기상일보에 ‘한파’소식이 있었다는데, 당시 기온이 15도 정도였다. 매년 영하로 떨어지는 매서운 한파에 훈련된 우리로써 귀여운 일기예보였다.


270미터 높이의 야생 수풀로 우거진 중국의 남산에는 43.7평방킬로미터의 엄청난 규모의 자연풍경구가 있다. 그 드넓은 풍경구 중앙을 가로질러 끝까지 가면 삼면에 부처가 있는 삼면관음상을 만날 수 있다. 백 팔 번뇌를 뜻하는 108미터 높이의 삼면관음상은 지혜, 자비, 평화를 의미하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아홉 가족 중 몇 몇도 향에 불을 붙여 방석 위에 엎드렸다. 나를 따라 기쁨이도 옆에서 절을 올렸다. 그러고 보니 입장할 때부터 내 곁에는 늘 기쁨이가 있었다. 가족의 재발견이란 여행의 의미를 채웠으면 했기에 나는 기쁨이에게 ‘이제 엄마랑 같이 다니는 게 좋지 않아?’라고 몇 번이고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도 몇 번이고 ‘괜찮아요’ 였다. 속으로 어쩌면 엄마도 기쁨이에게 벗어나 자유롭고 싶은 걸까 생각했다. 그 생각이 오해였다는 건 두고두고 부끄러울 일이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엄마가 없으면 오른쪽 뒤에 계셨고, 오른쪽으로 돌아봐서 없으면 언제나 왼쪽 뒤에서 느리게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귀찮으시겠다. 얘가 나랑 같이 다니는 걸 싫어해요. 내가 잔소리하니까 듣기 싫어서 (웃음)”



기쁨이네 엄마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아무리 보호가 필요한 자식이어도 때로 귀찮기 도 하겠다’ 했던 내 부끄러운 오해를 불식시킬 핑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찾아낸 구차한 변명은 ‘아직 자식을 키워본 적이 없어서’가 고작이었다. 그렇다. 어떤 엄마한테는 깨물지 않아도 이미 아픈 손가락이 있다. 남들과 조금 다른 내 아이는 그저 존재만으로 기특하다는 마음을 나는 헤아리지 못했다.


숱해 전인가 엄마와 언니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살던 때, 언니의 결혼과 함께 우리는 두 식구가 되었다. 30대로 들어서면서 나는 허세가 들었고, 결국 대책 없이 독립을 선언했었다. 식구가 둘 뿐인 조촐한 살림살이의 절반 정도나 이삿짐으로 묶다가 잠시 쉬던 엄마한테 말을 건넸다. ‘귀찮게 해서 미안해.’ 그 때 돌아온 엄마의 말은 이랬다.


“세상 모든 엄마는 내 자식이 어떻든 귀찮을 수 없어. 

엄마들한테는 유일하게 자유롭지 못한 자유가 너희들이다”


나는 다른 장소로 이동하며 기쁨이에게한 가지 약속을 청했다.


“기쁨아, 앞으로 엄마대신 다른 사람과 다닐 때는 한 번씩 뒤돌아보고 엄마를 찾기로 하자. 

엄마처럼 너도 엄마 잃어버리지 않게 잘 챙겨, 약속....”


원숭이 섬으로 건너가는 케이블카, 그리고 그 아래로 펼쳐져 있는 수상가옥


- 3 -

둘째 날 밤에는 저녁 식사를 마친 가족들과 간단한 게임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당일 일정을 모두 마치고 난 뒤여서 나른해지지 않을까 했던 담당자의 염려와 달리 모두 흥부자가 따로 없었다. 서두 진행을 맡았던 나는 내내 목구멍까지 차올라있던 이야기를 꺼냈는데, 다시 생각해 봐도 솔직한데 장사가 없다는 말은 진리였다. 


나 역시 일찍 엄마가 가장이었고, 아홉 가족과 한 동네에 살고 있다고 말을 꺼냈을 때 몇 몇 자녀들의 표정이 아직도 생각난다. 내 맘대로 해석하자면 ‘동감(同感)’ 같은 거였다. 내가 그 자리에서 나의 과거를 고백했던 건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계획된 시간이었다. 오래 전부터 언젠가 지금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당당하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나도 아이들처럼 혼자된 엄마와 청소년기를 보냈고, 지금의 나로 성장하는 동안 너무나 건강하게 잘 살아왔기 때문에 누구라도 가정환경을 이유로 방황하고 있다면 위로가 아니라 다짐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들에게 미래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다짐이 아니라 엄마의 인생에서 선택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는 ‘누구를 위한 삶’이 아니라 ‘스스로를 거둘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이라고. 그 힘은 묘하게도 강해질수록 바른 길을 걷고, 지혜로워지더란 말을 하고 싶었다. 한 발 물러서서 보면 엄마처럼 여린 가슴으로 엄청난 힘을 가진 사람이 없고, 그 힘은 우리한테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아쉽게도 이날은 이 말을 다 전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가족 소개를 할 때, 든든이(가명)가 ‘선생님처럼 저도’라며 말문을 열었을 때, 내 마음이 전해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신기하죠? 가족 소개만 간단히 할 줄 알았는데, 긴 사연을 말하고 같이 울고 또 공감하는 게.”

“그러게요. 다들 지쳐서 프로그램 못할 줄 알았는데, 모두 즐거워해서 다행이에요.”




- 4 -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드라마의 엔딩 씬처럼 누군가 준비한 듯 햇살이 좋다. 여정을 마무리하며 공항으로 가는 길에 잠시 해변가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여행의 끝이 아쉬워 쉼 없이 사진을 찍는 가족들, 해변가에 앉은 가족들 사이로 중학교 2학년, 예민이(가명)도 해질녘 반짝이는 바닷가의 절경 앞에서는 천생 발랄한 소녀가 따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창 사춘기 시절인 예민이는 얼마 전까지 암으로 투병했던 엄마를 곁에서 돌보며 학업을 이어야 했다.


햇빛이 따사로운 대동해 해변


없던 스트레스도 만들어내는 또래의 사춘기 소녀들에 비하면 예민이가 부리는 짜증은 반가운 건지도 모른다. 넘치는 화를 어떻게든 드러낼 줄 모르고 꾹꾹 눌러 가슴앓이만 했다면 언젠가 엄청난 폭풍을 몰고 올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나도 사춘기 시절 자주 몸살을 앓던 엄마 곁에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약국에서 사 온 쌍화탕을 데워주는 것뿐이었다. 자꾸 괜찮다고만 하는 엄마가 안 아픈 척을 해서 화가 났고, 엄마가 아플 때면 집 안 분위기가 침울해져서 짜증이 났고, 결국 답답한 마음에 문 닫고 방에 들어가 혼자 우는 날도 많았었다. 그런 시절이 떠올라서인지는 몰라도 나중에 예민이네 사연을 알게 된 나는 시크한 예민이가 그렇게 기특하고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그 김에 가족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서 카메라를 들었더니 이번에도 예민이가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내 눈에는 이렇게 보였다. ‘스마~일’!



공항으로 가기 전, 여독을 조금이라도 풀어준다는 의미로 단체로 발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물론 일정에 포함된 내용이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편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기쁨이네와 둥이네(가명) 가족과 한 방을 쓰게 됐다. 둥이네는 엄마와 둥이 누나, 둥이 이렇게 세 식구가 사는데, 둥이 누나는 짧은 여행 기간 동안 예쁜이랑 절친이 되는 바람에 다른 방에서 쉬겠다고 갔다. 둥이는 5살 꼬마 남자아이인데, 여러 관광지를 다니며 내 손을 잡고 다니며 숫자노래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며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즐겼던 친구였다. 둥이 엄마랑 나란히 자리를 잡았던 터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또래에 비하여 말이 더딘 둥이와 현재 미술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둥이 누나는 부모의 이혼과정을 겪으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스트레스이기도 하다. 




잦은 부모의 싸움이 아이들에게 불안감을 키운다면 부모의 이혼은 아이들에게 박탈감을 준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충격이 회복되는 데는 적당한 시간이 필요했기에 꼬마치고 속이 깊던 둥이와 까칠한 둥이 누나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았다. 함께 떠난 아홉 가족의 몇 몇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꾸만 옛 생각들이 떠올라서 마냥 반갑지 만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번 계기를 통해 그 때 보지 못했던 내 엄마의 모습과 심경, 그 때는 당연했던 나의 어리석음, 그 때는 지나쳤던 우리 세 가족의 소중한 순간들이 느린 속도로 되감기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시절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그 시절을 되짚어볼 수 있었고, 모르고 살았다면 사라져버렸을 좋고 또 나쁜 숱한 흔적들을 내 손 끝으로 보듬어 볼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다. 


외발자전거를 타기 위해서는 중심을 잘 잡을 수 있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고, 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잘 버틸 수 있는 지구력이 필요하다. 매우 진지하지만 지켜보는 이들을 위해 미소도 잃지 못한다. 우리 엄마들이 그렇다. 바퀴는 하나지만 홀로 완전하고, 빠르지는 않지만 멈추지도 않는다. 보기에 위태로운 바퀴 하나는 ‘한 부모 가족’에겐 가장 안전한 바퀴이며, 가장 든든한 바퀴가 될 것이다. 


어떤 가족이든 서로 알고 있다고 믿는 모습은 진짜 모습이 아닐 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뻔한 거짓말을 가족에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모에게 내가, 나에게는 부모가 가장 든든한 존재이길 바라기에. 부모가 둘이든 하나든 모든 부모와 자식은 똑같이 애틋하다.


아직 잘 모르겠다면 사랑으로 우리 가족을 재발견해보는 건 어떨까?


- 글/그림: 작가 두콩


★희망여행 <가족愛재발견>

 하나투어문화재단은 여행의 기회가 부족한 가족에게 여행을 지원함으로써 가족에 대한 사랑을 재발견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번 희망여행은 하나투어문화재단 주관, SM면세점의 후원, 종로구 사회복지협의회, 평창동 주민센터,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의 협력으로 진행됐으며 아홉 가족이 중국 하이난에서 행복하고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관련기사: https://goo.gl/285N9Z

  ☞카드뉴스: https://www.facebook.com/hanatourfoundation/posts/1893758033986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