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하나투어와 국가보훈처, 코레일이 맺은 협약의 일환으로 진행한 ‘지구별여행학교’.
독립유공자유족회의 추천을 받은 독립유공자 후손과 하나투어문화재단의 협력으로 함께한 전북 익산의 이리남초등학교 5·6학년 학생 등 총 20여명이 임시정부 초기 발자취를 찾아 중국 상해와 가흥으로 떠났답니다.
권미숙 교장선생님께서 보내온
학생들의 좌충우돌☆여행기,
공개합니다!
독립유공자 후손과 초등학생들이 함께한 임시정부 발자취 역사탐방
희망여행 프로젝트 '지구별 여행학교'
▶일시 : 2019년 12월 11일(수)~13일(금), 2박 3일
▶장소 : 중국 상해*가흥
▶대상 : 독립유공자 후손 및 이리남초등학교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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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유공자 후손분들과 우리 이리남초등학교 학생들이 하나투어 희망여행 프로젝트 ‘지구별 여행학교’를 통해 임시정부 발자취 역사탐방에 함께했다.
2019학년도 교육과정 시작에는 계획에 없었던 프로그램이다.
지난 3월 익산역에서의 3.1절 기념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영화 <항거> 관람, 제헌절 맞이 일제 강점기 시대 상황 모의 법정, 여름, 독도에서의 이리우도농악 공연 등 우리 학생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맞아 다양한 활동을 펼치면서 상해 임시정부를 방문하여 2019학년도 민주시민교육에 방점을 찍고 싶다는 소망을 품기 시작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심상사성(心想事成). 무언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사자성어처럼 학생들의 바람은 ‘지구별 여행학교’를 통해 현실이 되었다. 그저 견학 만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독립유공자 후손인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모둠을 이뤄 함께 여행을 가는 거란다. 내가 생각했던 현장학습보다 깊이가 깊어지며 꿈 이상으로 이뤄지게 될 이 여행에 가슴이 뛰었다.
첫번째 목적지 동방명주타워는 와이탄 (外灘)에 있다. 상해는 흐린 날이 많다던데 우리는 후손분들과 모둠을 이루어 동방명주타워에서 밝은 달과 현란한 조명에 빛나는 상해를 마주했다.
263M 타워에서 상해의 야경을 즐겼고, 스카이워크에서 고공의 짜릿함을 맛보며 '으악~~' 놀이도 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한 학생은 "선생님, 해 볼래요." 용기를 낸 듯 울먹이며 스카이워크에 발을 들여놓았다. "봐요! 저 했죠? 이젠 괜찮아요." 물론 한 번에 괜찮아질 리가 없다. 나도 그랬으니까. 네가 어른이 되어서 이 글을 읽기 바래. 너는 항상 잘하지 못하는 것들에 도전하는 용기 있는 학생이었단다.
상해의 날씨는 2/3가 흐림이란다. 그래서 타워에서도 시계가 확보되지 않으면 야경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날이 더 많단다. 마침 미세먼지도 없고 보름달까지 휘엉청 밝았다. 우리 학생들의 귀한 현장학습에 날씨도 한 몫 한 셈이다.
사천요리로 맛있는 저녁을 먹고 황푸강 유람선을 타며 상해의 야경을 즐겼다. 저녁 8시부터 밤 12시까지 하루 네 시간 조명으로 소요되는 전기요금이 10억이라고 한다. 동·서양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상해의 야경은 홍콩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애초에 중국정부는 1920년대부터 조차한 조계지의 건축물을 모두 헐어버리려 했다고. 그러나 세계의 건축물이 다 모인 그곳을 살려 이리 멋진 관광지로 바꿔 놓은 그들의 선택은 탁월했다. 침략의 역사 흔적을 지운다 한들 지워지겠는가.
게다가 임시정부의 시작과 끝이 이곳 와이탄이었음을, 우리가 타고 즐긴 황포강(황푸취) 유람선 뱃길이 김구선생님이, 이봉창의사가, 윤봉길의사의 발이 닿고 떠난 곳임을 떠올리며 여행 첫날을 마무리했다.
임시정부의 흔적을 따라가다
짧은 거리지만 행정구역상 성을 넘었다. <김구선생님의 피난처 가흥>은 저장성(절강성)의 작은 도시 자싱 매만가 76호, 추푸청의 양아들 첸둥성의 집이다.
추푸청은 당시 국민당 간부이며 상하이법대 총장으로 강력한 항일운동가였다. 추푸청은 위기에 빠진 김구선생님께 피난처를 제공했다. 윤봉길의사의 의거로 일본이 조선독립군 검거에 혈안을 올리며 김구선생님도 위기에 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이 내건 김구선생님의 현상금은 60만 원, 현싯가로 환산하면 200억원. 피난처 제공은 단순한 의미 이상을 지닌, 모든 것을 건 모험인 셈이다.
이곳에 대한 설명은 독립운동가 후손이신 김세걸 선생님께서 맡으셨다. 선생님께서는 우리역사에 식민지는 없었다 말씀하셨다. 1919년 4월 11일, 이미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이 공포되었고, 헌정회가 구성되어 엄연히 정부가 존재하였음으로 ‘일본의 식민지’라는 용어를 절대 써서는 안된다 강조하셨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임시정부 헌법 제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에서 비롯된 것임으로 광복절과 건국절 또한 절대 있어서는 안될 논란이라 말씀하셨다.
역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다.
김구선생님의 고단했던 피난살이도 그렇지만 온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한 은신처 제공도 놀랍다.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오래 생활하신 독립유공자 후손 김세걸 선생님은 중국사람들의 인간관계를 잠시 언급하셨다. 중국사람들의 펑유(친구)관계는 물보다 진한 듯하다. 추푸청과 김구선생님은 펑유란다. 펑유! 시간만 조금 손해를 봐도 탈탈 터는 요즘 사람들이 배워야할 덕목이 아닐지.
김구선생님이 쓰시던 방의 마룻장을 걷으면 보이는 아래 작은 통로인 탈출구가 있다. 올려다보는 나도 내려다보는 이도 서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이곳 피난처는 한·중 수교 이후 복원된 곳임으로 당시의 것은 선생님께서 쓰시던 목욕통뿐이다. 곳곳에서 피난살이의 고단한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첸둥성 부부가 사용했다는 침실 탁자엔 그들의 가족사진이 있다. 나는 내 몫으로 받은 태극기를 일가의 가족사진 앞에 헌정했다. 감사합니다. 김구선생님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켜주소서.
다시 가흥에서 상해 홍커우공원으로 이동했다. 지금은 루쉰공원으로 불린다.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루쉰공원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윤봉길의사 기념관. 그의 호를 붙여 ‘매헌’이라 한다.
참가자들 모두 기념관 앞에서 묵념을 했다. 독립유공자 후손 황긍재 선생님께서 묵념 의식곡을 틀어주셨다. 학생들은 곡이 끝나기까지 꽤 많은 생각을 했으리라. 동행한 교사도 이 순간 울컥 했단다. 한 사람만의 느낌이 아니었다.
윤봉길의사 기념관을 그저 다녀오기엔 미안했다. 그래서 태극기와 편지를 준비했다.
이번 여행에 앞서 한 학생이 준비한 편지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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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헌 윤봉길 선생님께 ♥
저는 처음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요.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윤봉길 선생님에 대해 공부하면서 마음 한켠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조금씩 자라게 되었어요.
만약 이렇게 우리나라를 위해 힘써주신 분들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가 되었을까요?
우리나라를 떠나 중국 상해로 떠나시면서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지만, 묵묵히 그리고 자랑스럽게 선생님께서 결정하신 대로 행동하신 모습을 보면서 정말 놀랐습니다.
윤봉길 선생님! 대한민국을 위해서 희생해주시고 지켜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처럼 미래에도 선생님의 노력이 잊혀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제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겠습니다.
꼭 실천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국민!
윤봉길 선생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2019년 12월 12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상해임시정부와 윤봉길의사기념관(매헌)을 다녀갑니다.
전라북도 익산시 이리남초등학교 * * *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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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이미 백범일지를 읽었음으로 김구선생님과 윤봉길의사의 일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물통폭탄과 도시락폭탄, 선생님의 시계, 한인애국단 본부에서 찍은 두 분의 사진. 학생들이 책을 통해 막연히 알고 있었던 것들을 현장에서 맞닥뜨리며 무거운 마음이었겠으나 깊이 공감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그 자리가 더 숙연했는지도 모른다.
다음은 윤봉길의사께서 동포에게 보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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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 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백 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이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들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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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상해로 이동하여 임시정부청사를 찾았다. 2019 민주시민교육의 방점을 상해 임시정부에서 찍고 싶다는 염원이 이루어진 순간이다. 가슴이 벅차올랐던 건 비단 이 때문만은 아닐 게다. 100년 전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자 애쓰시던 독립운동가들의 숨결이 느껴져서 일 터. 그분들이 넘나들었을 이 문턱에서 우리는 경건할 수 밖에 없었다.
상해에 남아있는 유일한 임시정부 청사이자 상해에서의 마지막 청사이기도 한 상해 임시정부청사. 열 두 번이나 이사해야 했던 궁핍한 임시정부 살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이드는 도착 전부터 작다고 생각해선 안된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아마도 사람들이 와서 보고 갈적 마다 '에게~'라고 말했던 모양이다.
염려하지 마시라. 우리 학생들은 사전학습이 철저하다.
청사 안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밖에서 보아선 2층 구조지만 내부는 3층 구조다. 하나의 사무실 안에 삼부가 존립 했고, 업무 공간과 주거 공간이 함께 있었다. 열 두 번이나 이사를 한 이유도 돈이 없어서라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 정부과 교민들의 지원을 받게 된 시기는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 의거 후이다. 이런 가난한 나라를 26년간 초창기부터 끝까지 이끌어오신 김구선생님은 당신의 말씀대로 진정한 문지기라 생각된다.
<나는 안씨(안창호)에게 정부의 문지기를 청원하였다.> -백범일지 중-
진짜 여행은 지금부터 시작이란다
‘지구별 여행학교’ 마지막 일정이자 서프라이즈 일정!
우리 모두에게 용돈을 주겠단다. 용돈? 많든 적든 용돈은 받는 재미, 쓰는 재미다. 대신 조건이 있다. 참가학생들과 독립유공자 후손은 서로를 위한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생각해볼 테고 함께 한 여행도 돌아볼 수 있으리라.
참가자들은 상해의 타이캉루를 방문해 후손팀과 학생팀으로 나누어 선물 구입의 시간을 가졌다. 가이드로부터 배운 중국어 표현 몇 마디를 건네는 학생,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입에 성공한 학생, 모두가 새로운 경험이다.
숙소 연회장에 모여 진행된 특별프로그램. 참가자들과의 ‘미리크리스마스 파티’가 시작됐다. 선물교환에 앞서 서로의 마음을 담아 크리스마스 카드를 썼다. 학생들 못지않게 독립유공자 후손 선생님들 모습도 사뭇 진지했다. 학생들이 구입한 선물 중에서는 모형시계가 유독 많았다. 그 까닭은 김구선생님과 윤봉길의사의 시계 일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모둠별 나눔시간. 이번 여행의 클라이막스다. 울음을 터뜨리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학생들에게 동요를 불러 위로해 주기는 후손분도 계셨다. 역사의 중요성을 배우는 학생들이 대견하다 하셨다.
한 후손분께서는 영화 <암살>의 끝장면을 상기시켜 주셨다.
< ***, ***, *** 다 잊혀지겠지!>
<우리사회도 그러한데, 다들 잊어 가는데 이리남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이렇게 공부해줘서 고맙다.>
후손분의 말씀에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는 이리남초교 교사의 말처럼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함께 다지는 자리가 되었다.
내게도 한마디 하라 시간을 내 주신다. 나는 울보다. 행복해도 울고, 슬퍼도 울고. 울고, 울고. 작심을 하고 나갔다. 오늘은 울지 말아야지. 침을 꿀꺽 삼켜보기도 하고, 애꿎은 천정을 바라보기도 하지만 난 역시 울보다. 울먹이는 내게 학생들이 연호한다.
"울지마! 울지마!, 울지마!"
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고 했다. 정년퇴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 했다. 우리 학생들에게 이런 큰 선물을 주신 여러분께 감사하다 했다. 지금도 잘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더 잘하려 애쓰지 말고 이 만큼만 해 달라 당부했다.
이 글은 학생들이 커서 지금은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돌이켜 보라는 뜻으로 여정을 따라 기술했다. 내 블로그의 <꿈꾸는 학교> 카테고리 역시 학생들을 키우는 엄마가 쓴 육아일기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행여 살다가 힘든 날, 우리 학생들이 이 글을 읽으며 힘냈으면 좋겠다.
체험학습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이번 여행. ‘미리크리스마스 파티’를 통해 함께한 시간을 되돌아보고 마음을 나눔으로써 학생들에게는 교육으로 다져지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같은 출발선 상에 함께 선 공동체가 되었다.
나는 이런 사회공헌 사업이 비단 우리가 아니더라도 계속되기를 소망한다.
중국의 공항은 입구부터 검색이다. 공항에 딱 들어서는 순간 한 번, 출·입국 게이트에서 또 한 번, 출·입국 심사에서 또 한 번. 그렇게 세 번을 하며 당황스러운 일들이 벌어졌다. 들어올 땐 문제되지 않았던 보조배터리가 하나로 제한되는가 하면 가방 속 보조배터리는 꺼내서 심사를 받아야 했다. 학생들은 독립유공자 후손께 선물로 받은 작은 워터볼을 빼앗겼다. 그 안에 든 액체 용량이 100ml 가 넘어서란다. 작은 오르골도 빼앗겼다. 이유를 물어볼 수도 없었다. 물을 가져오면 안된다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물병을 세 개나 가져온 녀석도 있었다.
이그~~. 그래도 좋다.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겐 경험이고 학습일테니.
사흘로 마치기엔 아쉬움이 많다. 이제 막 정들었는데, 정들자 이별이다. 문득 만나고 헤어지는 게 쉬운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쉬운 사람은 그닥 흔치 않을 거다.
독립유공자 한 분 한 분은 각각의 역량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었다. 이방인으로 사셨던 그곳에서 가진 역량마저도 조국에 돌아와 인정받지 못하고 다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참 안타까웠다. 처우개선이라 함은 이분들이 조국에 돌아와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자신의 역량을 인정받아 우리사회의 일원으로 공정하게 대우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쪼록 이번 프로그램을 준비해주신
하나투어, 국가보훈처, 코레일, 하나투어문화재단, 독립유공자유족회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깊이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우리 학생들 잘 키우겠습니다.
상해와 가흥, 임시정부 초기 발자취를 밟은 너희들의 진짜 여행은 지금부터 시작이란다.
글. 권미숙(익산 이리남초등학교 교장)